다윗의 싸움은 왕권을 지키는싸움이 아니라, 아들 압살롬을 구하는 싸움인데,이 땅에서 오신 예수님의 싸움은 하나님이 맡기신 아들들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는 싸움입니다.자기 뜻대로 살겠다고 항상 하나님께 반역을 하는 우리를 살리는 싸움으로, 하나님께 반역한 아담, 아버지에게 반역한 아들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지만, 아들을 살려보겠는 것이 다윗 이야기, 그리고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공의를 집행하는 이스라엘의 왕의 입장과,아들을 용서하려는 아버지 사랑 사이에서,갈등하다 아들을 잃지만,하나님께는 비밀스러운 지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사실이 다른데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하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림으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루어지고, 사람을 향하신 사랑도 완성하게 됩니다. 하늘의 아버지와 이 땅에 온 아들이 합력하여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달려야 하는 십자가에 사람 대신하나님…
오늘 같이 살펴볼 주제는, 다윗의 자식들에게 존재하는 성품 중, 특히 죄 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다윗에게 있는 죄 성이 아들들에게 유전된 것일까요?아니면 양육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일까요?오래된 논쟁,Nature vs. Nurture, 본성 vs. 양육,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특징이 본성과 환경, 어느 것에 의하여 더 많이 영향을 받는가, 유전자의 힘이 강할까 아니면 환경의 힘이 더 강할까, 사람은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논쟁입니다.
사람을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는 방법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치는 것,부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자녀가 아픈 것입니다.죄는 부모가 지었는데, 왜 아이가 죽는 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과연 fair한가 질문이 나오지만, 아이의 죽음이 다윗이 저지른 죄의 결과이지만, 죄에 대한 벌은 아니라는 사실, 죄는 용서받지만 누군가는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죄를 지은 것은 사람이지만,예수께서 십자가 형벌을 받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입술로 죄를 인정하면 죄를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죄의 자백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침 받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 회개로 거듭난 피조물,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의 약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강함으로 바뀌는데, 회개기도는 우리에게 있는 연약함을 하나님의 강함으로 바꾸어 달라는 간구입니다.
한번 죄의 노예가 되면 더 큰 죄를 저지르는데, 불륜으로 시작된 죄는 더 큰 죄를 낳고 위장살인으로 발전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하나님의 종이라도 한번 죄에 빠지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날려버립니다. 죄를 합리화하거나 숨기려는 노력은 더 많은 죄를 짓게 합니다.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더라면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
불륜을 주도하는 것은 정욕, 절제 없는 정욕을 낳는 것은, 자만, 방심으로사람이 욕구를 충족시키면 그 욕구는 감소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틀린 생각입니다.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채우면 더 채우고 싶고,한계를 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끝이 없습니다.우리는 어떻게 이런 죄 성에서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을까요?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마치 친 자식처럼 대하고 있는데, 진정으로 요나단을 생각하며친구의 아들을 마치 친 자식처럼 대하는데,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hesed가 있기 때문인데 장차 오실 예수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올바른 해석이 나오지 않습니다.첫째, 하나님의 hesed는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에게 주시는 조건 없는 사랑 둘째, 사람의 hesed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 속에 존재하는 사랑으로,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 계획과 다르다는 것은 어떻게 알까요?내가 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 물론 마귀의 장난일 수도 있지만,기도를 계속해도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높습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궤가 블레셋에 있을 때 법궤는 저주였고,웃사의 집에서는 재앙으로 바로 연결이 되었고,오벧에돔 집에서 축복인데,왜 똑같은 법궤가 저주, 재앙, 축복으로 변신을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축복과 재앙으로 갈라진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은,마음을 다하여 높이기도 하는 것, 동시에 하나님을 기뻐하며춤추고즐거워하는 것입니다.